채권 투자에서 수익을 결정하는 요소라고 하면 가장 먼저 이자수익이나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상승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금리가 내려가면 기존 채권가격이 상승하고, 금리가 올라가면 가격이 하락한다는 원리는 채권 투자의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그런데 시장금리가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채권가격이 변하면서 추가적인 수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채권의 만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짧아지고, 수익률곡선상에서 위치가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격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이 롤다운(Roll-down)입니다.
롤다운을 이해하면 채권수익이 표면금리나 금리 방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수익률곡선의 형태와 채권의 잔존만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채권 롤다운이란 무엇일까?
채권은 시간이 지나면서 만기가 자연스럽게 짧아집니다.
예를 들어 잔존만기가 5년인 채권을 매수했다면 1년 후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어도 잔존만기가 약 4년으로 줄어듭니다. 이때 채권은 수익률곡선에서 5년 지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4년 지점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만기 축소에 따른 수익률곡선상의 이동을 롤다운이라고 합니다.
수익률곡선이 우상향하고 있고 다른 시장조건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만기가 짧은 채권의 시장수익률이 더 낮게 형성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채권의 요구수익률이 낮아지면 기존 채권의 현재가치는 올라가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가격 변화가 롤다운 수익의 핵심입니다.
2. 수익률곡선의 형태가 중요한 이유
수익률곡선(Yield Curve)은 채권의 만기별 수익률을 연결한 선입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신용위험을 가진 채권의 수익률이 다음과 같이 형성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 1년물: 3.0%
• 3년물: 3.4%
• 5년물: 3.8%
• 10년물: 4.2%
이처럼 만기가 길어질수록 수익률이 높아지는 구조를 일반적으로 우상향 수익률곡선이라고 합니다.
5년 만기 채권을 매수한 뒤 시간이 지나 잔존만기가 3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면, 다른 조건이 그대로라는 가정 아래 해당 채권은 3년물에 가까운 수익률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3.8% 수준에서 평가되던 채권이 이후 3.4% 수준의 수익률로 평가된다면 요구수익률 하락에 따라 채권가격은 상승할 수 있습니다.
즉 기준금리가 실제로 인하되지 않더라도 시간의 흐름만으로 가격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3. 롤다운 수익이 발생하는 원리
채권가격과 수익률은 일반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장이 요구하는 수익률이 내려가면 이미 발행된 채권의 가격은 올라가는 구조를 가집니다.
롤다운에서도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시장 전체의 금리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 채권의 잔존만기가 짧아지면서 수익률곡선의 더 낮은 수익률 구간으로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현재 5년물 수익률이 4%, 4년물 수익률이 3.7%라고 해보겠습니다.
5년물을 매수해 1년간 보유하면 해당 채권은 4년물이 됩니다. 1년 후에도 수익률곡선의 형태가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이 채권은 3.7%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수익률이 4%에서 3.7%로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하면서 채권가격에는 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발생하는 가격 상승분이 롤다운을 통한 수익의 한 부분입니다.
4. 채권의 전체 수익은 이자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채권 투자수익을 이해할 때는 여러 수익 요소를 구분해 보는 것이 유용합니다.
채권을 보유하면 먼저 약속된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시장금리 변화에 따른 채권가격의 상승 또는 하락이 더해질 수 있으며, 수익률곡선을 따라 만기가 짧아지는 과정에서도 가격 변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단순화하면 채권의 보유기간 수익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채권에서 지급되는 이자수익
• 시장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
• 롤다운에 따른 가격 변화
• 신용스프레드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
실제 시장에서는 이 요소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롤다운 수익만 정확하게 분리해서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조를 구분해 두면 채권수익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5. 롤다운과 금리 하락에 따른 수익은 다르다
롤다운 수익과 일반적인 금리 하락에 따른 채권가격 상승은 비슷해 보이지만 원인은 다릅니다.
금리 하락에 따른 가격 상승은 시장금리 자체가 변하면서 발생합니다.
반면 롤다운은 수익률곡선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시간이 흐르면서 채권의 잔존만기가 줄어드는 데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5년물 금리가 4%에서 3.5%로 내려갔다면 시장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볼 수 있습니다.
5년물 금리는 계속 4%이고 4년물 금리도 계속 3.7%인데 보유한 채권이 5년물에서 4년물로 이동했다면 롤다운 효과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 투자에서는 두 현상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으므로 수익의 원인을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6. 수익률곡선이 가파를수록 롤다운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우상향 수익률곡선에서 같은 수준의 롤다운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5년물 수익률이 4.0%이고 4년물이 3.9%라면 두 구간의 차이는 0.1%포인트입니다.
반면 5년물이 4.0%, 4년물이 3.4%라면 차이는 0.6%포인트가 됩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두 번째 상황에서 만기가 짧아질 때 나타나는 수익률 변화가 더 큽니다. 채권의 듀레이션까지 고려하면 이러한 수익률 변화가 가격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롤다운 전략을 분석할 때는 단순히 장기금리가 높은지를 보는 것보다 수익률곡선의 어느 구간이 얼마나 가파른지를 살펴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7. 역전된 수익률곡선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수익률곡선은 항상 우상향하지 않습니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은 장단기 금리 역전 상황에서는 만기가 짧아지는 방향으로 이동했을 때 오히려 더 높은 수익률 구간에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5년물 수익률이 3.5%인데 4년물 수익률이 3.8%라면 시간이 지나 채권이 5년물에서 4년물로 이동하면서 요구수익률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채권가격과 수익률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원리를 적용하면 이러한 구조에서는 일반적인 우상향 곡선에서 기대했던 것과 반대의 가격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롤다운을 무조건 추가 수익이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수익률곡선의 형태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8. 듀레이션과 함께 봐야 하는 이유
수익률이 같은 폭으로 변하더라도 채권마다 가격 변화폭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개념이 앞서 다뤘던 듀레이션입니다. 듀레이션이 길수록 일반적으로 금리 변화에 대한 채권가격의 민감도가 높아집니다.
수정듀레이션이 5인 채권에서 수익률이 약 0.2%포인트 낮아진다고 가정하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가격은 대략 1% 정도 상승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근사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채권가격 변화율 ≈ -수정듀레이션 × 수익률 변화
실제 가격 변화에는 컨벡서티와 다양한 시장요인이 추가로 작용하므로 정확한 결과가 이 계산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롤다운 효과의 크기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9. 신용스프레드가 변하면 롤다운 효과가 사라질 수도 있다
회사채에서는 국채보다 한 가지 변수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기업의 재무상태가 악화되거나 시장의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지면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익률곡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0.3%포인트의 수익률 하락 효과가 기대되더라도 신용스프레드가 0.5%포인트 확대된다면 전체 요구수익률은 오히려 상승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기대했던 롤다운 가격 상승이 상쇄되거나 채권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사채의 롤다운을 분석할 때는 국채금리 곡선뿐 아니라 해당 신용등급이나 발행자의 신용스프레드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10. 롤다운은 확정수익이 아니다
롤다운을 이해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수익률곡선이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오늘 5년물과 4년물 사이에 큰 금리 차이가 있다고 해서 1년 뒤에도 동일한 구조가 유지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기준금리 전망과 물가, 경기 상황, 채권 수급 등이 달라지면 수익률곡선 자체가 움직입니다. 곡선이 평탄해질 수도 있고 더 가팔라질 수도 있으며 방향이 역전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수익률곡선에서 계산되는 롤다운은 미래에 확정적으로 얻게 되는 수익이라기보다 일정한 시장조건을 가정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가격 효과에 가깝습니다.
11. 채권 ETF에서도 롤다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채권 ETF는 여러 채권을 편입하면서 정해진 만기구간이나 지수를 추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잔존만기 범위의 채권을 유지하는 ETF라면 시간이 지나 만기가 짧아진 채권을 매도하고 더 긴 만기의 채권을 새롭게 편입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별 채권을 만기까지 계속 보유하는 투자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만기구간을 유지하는지, 편입채권을 언제 교체하는지, 현재 수익률곡선이 어떤 형태인지에 따라 ETF의 수익구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권 ETF를 분석할 때 현재 표시된 수익률뿐 아니라 평균 듀레이션과 만기구조를 함께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2. 채권수익을 수익률곡선 위에서 바라보기
롤다운은 채권수익을 단순히 ‘이자를 얼마나 받는가’라는 관점에서 한 단계 더 확장해주는 개념입니다.
채권은 시간이 흐를수록 만기가 짧아지고 수익률곡선 위에서 위치가 달라집니다. 우상향하는 수익률곡선에서는 이 이동이 요구수익률 하락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곡선의 형태가 다르면 반대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롤다운을 분석할 때는 현재 채권수익률 하나만 보는 것보다 수익률곡선의 기울기, 잔존만기, 듀레이션, 신용스프레드와 시장금리의 변화 가능성을 함께 연결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채권을 바라보면 표면금리, 만기수익률(YTM), 듀레이션, 수익률곡선이 각각 독립된 용어가 아니라 하나의 채권가격을 설명하는 서로 연결된 요소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