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은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산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주식은 기업의 성장과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고, 채권은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현금은 장기간 보유할수록 물가상승으로 구매력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승장이 이어질 때는 현금을 보유하는 것보다 투자자산의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이 담당하는 역할을 기대수익률만으로 평가하면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금은 전체 자산의 변동성을 조절하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에 대응할 수 있는 유동성을 제공합니다. 시장이 크게 하락했을 때 투자자산을 매도하지 않고 생활자금을 마련하거나 새로운 투자기회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현금 비중을 결정하는 문제는 투자하지 않은 돈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포트폴리오의 안정성과 유동성을 어느 수준으로 설계할 것인가에 가깝습니다.
1. 현금은 포트폴리오에서 변동성이 낮은 자산의 역할을 합니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은 가격이 계속 움직입니다.
주식시장이 하루에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금리 변화로 채권 가격이 내려가면 포트폴리오의 평가금액도 영향을 받습니다.
반면 현금 자체는 주식과 같은 시장가격 변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A포트폴리오가 주식 100%이고 B포트폴리오가 주식 70%, 현금 30%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주식시장이 20% 하락하고 다른 조건을 제외한다면 A포트폴리오는 약 20%의 하락을 그대로 경험합니다.
B포트폴리오는 주식에 투자된 70%가 20% 하락하므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감소폭은 약 14%가 됩니다.
현금을 일정 비율 포함하면 위험자산의 가격변동이 전체 자산에 미치는 영향을 낮추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 현금 비중이 높아질수록 기대수익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금이 변동성을 낮춰준다고 해서 비중을 계속 높이는 것이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장기간을 기준으로 성장자산이 현금보다 높은 수익을 제공한다면 현금 비중이 높을수록 포트폴리오의 장기 기대수익률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의 장기 기대수익률을 연 7%, 현금성 자산의 수익률을 연 2%라고 단순하게 가정해 보겠습니다.
주식 100%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률은 7%입니다.
주식 70%, 현금 30%라면 단순 가중평균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7% × 70%) + (2% × 30%) = 5.5%
현금을 추가하면 예상되는 변동성은 낮아질 수 있지만 기대수익도 함께 낮아집니다.
결국 현금 비중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투자자가 원하는 수익과 감당할 수 있는 위험 사이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3. 비상자금과 투자 대기자금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좌에 있는 모든 현금을 하나의 목적으로 생각하면 자산관리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현금은 용도에 따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활을 위한 비상자금입니다.
갑작스러운 의료비나 수리비, 소득 공백 등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입니다.
두 번째는 가까운 시기에 사용할 예정인 목적자금입니다.
주택 계약금이나 학비, 결혼비용처럼 사용 시점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면 시장가격 변동에 크게 노출시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투자 포트폴리오 안에서 전략적으로 보유하는 현금성 자산입니다.
이 자금은 리밸런싱이나 새로운 투자기회가 생겼을 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 다른 현금을 모두 ‘투자하지 못한 돈’으로 판단하면 필요한 유동성까지 위험자산에 투입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4. 현금은 시장 하락기에 강제매도를 피할 수 있게 합니다
장기투자에서 큰 문제 중 하나는 자금이 필요한 시점과 시장 하락이 겹치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산 5,000만 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시장이 30% 하락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평가금액은 약 3,500만 원까지 감소합니다.
이때 갑자기 1,000만 원의 현금이 필요하다면 투자자산 일부를 낮아진 가격에 매도해야 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현금이나 비상자금을 별도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시장 회복을 기다릴 선택지가 생깁니다.
현금의 역할은 손실을 직접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가 좋지 않은 시점에 자산을 강제로 매도해야 하는 상황을 줄이는 데 있습니다.
장기투자 전략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완충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시장 급락은 현금의 기회비용을 다르게 보이게 합니다
상승장이 지속될 때 현금을 보유하면 투자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이 20% 상승했는데 포트폴리오의 30%를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다면 그 현금은 주식의 상승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현금 보유의 기회비용입니다.
반대로 시장이 크게 하락하면 현금의 역할은 달라집니다.
현금이 있다면 낮아진 가격에서 자산을 추가로 매수하거나 목표 자산배분을 복원하는 리밸런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상승장에서는 수익률을 낮추는 요소처럼 보였던 현금이 하락장에서는 투자 선택권을 제공하는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현금의 가치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체감될 수 있습니다.
6. 현금이 있다고 해서 시장 저점을 맞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기회를 위해 현금을 보유한다고 하면 시장이 크게 하락했을 때 정확한 저점에서 매수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시장의 저점을 사전에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주가가 10% 하락했을 때 매수했는데 이후 추가로 20% 하락할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시장 하락을 기다리며 현금 비중을 지나치게 높여 놓았는데 예상과 달리 상승장이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입니다.
이 경우 투자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시장의 성장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현금을 보유하는 목적을 시장 타이밍 예측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현금은 미래의 저점을 맞히기 위한 도구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는 자산으로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7. 현금 비중은 투자기간과 연결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10년, 20년 뒤에 사용할 자금과 1년 뒤에 사용할 자금은 같은 방식으로 운용하기 어렵습니다.
투자기간이 길다면 단기적인 시장 하락 이후 회복을 기다릴 시간이 상대적으로 충분합니다.
반면 1~2년 안에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돈을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했다가 필요한 시점에 시장이 크게 하락하면 계획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금 비중을 결정할 때는 나이나 시장 전망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자금의 사용 시점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가까운 시기에 필요한 자금은 안정성과 유동성의 비중을 높이고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자금은 투자목표와 위험감수 수준에 따라 성장자산을 활용하는 식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8. 현금에도 물가상승이라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현금은 시장가격이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위험이 구매력 감소입니다.
현재 1,00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몇 년 뒤에도 같은 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물가가 매년 3%씩 상승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10년 뒤 전반적인 가격 수준은 현재보다 약 34% 높아질 수 있습니다.
계좌에 표시되는 1,000만 원이라는 숫자는 그대로여도 그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감소하는 것입니다.
현금의 안정성은 명목금액을 기준으로 한 안정성에 가깝습니다.
장기간의 자산관리에서는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실질가치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9. 금리 수준에 따라 현금 보유의 기회비용도 변합니다
현금성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금리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시장금리가 높은 시기에는 예금이나 단기금융상품 등을 통해 현금성 자산에서도 일정 수준의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리가 매우 낮다면 현금을 보유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투자수익의 상대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적절한 현금 비중을 하나의 고정된 수치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금리 전망에 따라 현금 비중을 지나치게 자주 변경하는 방식 역시 시장 타이밍 전략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금리환경은 현금의 상대적인 매력을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로 활용하되 자신의 투자목적과 필요한 유동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10. 현금은 리밸런싱을 실행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목표 포트폴리오가 주식 60%, 채권 30%, 현금 10%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하면 주식의 평가금액이 감소하면서 비중이 50%까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이때 목표 비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자산 일부를 매도해 주식을 매수할 수도 있지만 기존 현금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새로운 투자금과 현금성 자산을 이용하면 매도 거래를 줄이면서 낮아진 자산 비중을 높일 수 있습니다.
현금은 포트폴리오 밖에서 쉬고 있는 돈이 아니라 자산배분을 조정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리밸런싱 계획과 현금 비중을 함께 설계하면 시장 변동에 대응하는 기준도 보다 명확해집니다.
11. 현금이 너무 적으면 심리적인 부담도 커질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의 거의 모든 자금을 변동성이 큰 자산에 투자하면 시장 하락 시 계좌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생활비나 비상자금까지 투자되어 있다면 투자자는 가격 하락 자체뿐 아니라 당장 돈이 필요해질 가능성까지 걱정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투자를 계획했더라도 하락장에서 자산을 매도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필요한 현금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면 단기적인 시장 변동과 생활자금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쉬워집니다.
자신의 위험감수 수준은 이론적인 수익률과 변동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현금이 있어야 투자계획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포트폴리오 설계의 일부입니다.
12. 현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도 장기 목표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현금 부족만큼 과도한 현금 보유도 점검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목적의 자금까지 대부분 현금으로 보유하면 시장 변동은 작아질 수 있지만 자산의 실질가치를 충분히 성장시키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은퇴까지 20년 이상 남아 있고 당장 사용할 필요가 없는 자금까지 모두 현금으로 보유한다면 물가상승에 따른 구매력 감소를 장기간 감수해야 할 수 있습니다.
안정성을 지나치게 추구한 결과 장기적인 재무목표에 필요한 수익률을 얻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위험입니다.
투자위험은 계좌가격이 떨어지는 상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목표한 시점에 필요한 자산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위험도 자산관리에서 생각해야 할 요소입니다.
13. 적정 현금 비중은 하나의 공식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전체 자산의 10%를 현금으로 보유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30%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소득과 지출 구조, 부채, 직업의 안정성, 투자기간, 예정된 큰 지출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금 비중을 결정할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예상하지 못한 지출에 대응할 비상자금이 마련되어 있는가?
• 가까운 시기에 사용할 큰 금액이 있는가?
• 시장이 크게 하락해도 투자자산을 매도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가?
• 현재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감당할 수 있는가?
• 현금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해 장기수익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요소를 종합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현금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현금은 수익을 쉬게 하는 돈이 아니라 선택권을 남겨두는 자산입니다
현금은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자산은 아닙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면 구매력이 감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는 수익률 이외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금 비중이 높아지면 위험자산의 가격변동이 전체 자산에 전달되는 정도를 낮출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했을 때 투자자산을 좋지 않은 시점에 매도할 가능성도 줄일 수 있습니다. 시장 하락기에는 리밸런싱이나 추가 투자를 실행할 수 있는 유동성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필요 이상의 현금을 장기간 보유하면 투자수익의 기회비용과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가치 감소를 감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금 비중의 핵심은 최대한 줄이거나 최대한 늘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안전자금과 가까운 미래의 목적자금, 장기투자 자금을 구분한 뒤 각각의 역할에 맞는 수준을 설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산이 아닙니다.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투자자가 계획을 유지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여유를 제공하는 자산입니다.